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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일의 국보를 소장한 가천박물관 - 이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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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자락의 인천시립박물관이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둘러보았다면, 내친김에 가볼 곳이 있다. 가천박물관이다. 소장 유물의 폭과 깊이를 보았을 때 어느 박물관보다 귀한 시간과 가치를 품고 있는 곳이다. 시립박물관 주차장 옆 도로에서 흥륜사 방면으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주변이 고급 주택가여서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 싶은 자리다.


가천박물관에는 인천 유일의 국보가 있다. 인천을 잘 안다는 사람 중에도 이 사실은 처음 듣는다는 이들이 많다. 주인공은 국보 제276호로 지정된 《초조본유가사지론 권 제53》이다. '유가사지론'은 법상종 승려들이 공부하던 대표적 불교 경전 중 하나다. 당나라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와 번역했다고 한다. 고려 현종때, 초조대장경을 만들면서 판각해 인출한 것이다. 가천박물관 소장품은 전체 100권 중 53권에 해당하는데, 각필로 눌러 쓴 석독구결이 발견되었다. 석독구결은 한문을 우리말로 읽기 위한 표시다. 각필은 색깔이 있는 것으로 눈에 띄게 쓴 게 아니라 뾰족한 나무나 뿔 같은 것으로 잘 보이지 않게 눌러 썼다는 얘기다. 초조대장경은 고려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원판은 몽골 침략 때 불에 타 사라지고 말았다. 인쇄본도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


가천박물관에는 국보 이외에도 보물 14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3건 등 총 19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길병원과 한 식구여서 그런지 의료사 자료가 유난히 많다. 보물 제1178호 《향약제생집성방 권 6》 등 8점의 의료 관련 보물을 갖고 있다. 의료 생활사 자료만 3500여 점이니 가히 국내 최대 의료 생활사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900여 점의 의서를 포함한 고서도 1만1200여 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채약도구, 정리도구, 약연, 약장, 약 도량형, 침구 등 우리 조상들이 질병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당시 물건들도 눈길을 끈다. 약재를 갈 때 쓰던 약연이나, 약을 빻아 가루로 만드는 데 쓰는 약절구, 유발, 약탕기는 예술작품처럼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가천박물관에서는 우리나라 잡지 발행의 역사도 꿈틀댄다. 신문과 잡지 창간호 2만 200여점을 갖춘 창간호 소장 박물관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일본 도쿄에서 조직된 영남지역 유학생 단체, '낙동 친목회'가 신교육 보급과 자주독립 사상 고취를 목적으로 발간한 《낙동 친목회학보》, 우리나라 근대 잡지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최남선의 《소년》, 최초의 교육학습지 《장학보》, 호남지역 교육과 주권수호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직된 호남학회의 기관지 《호남학회월보》,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을 기반으로 결성된 기호흥학회에서 발행한 애국계몽잡지 《기호흥학회월보》 등은 각 분야에서 앞서 나간 인물들이 잡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준다.


최남선이 주도한 아동잡지로 순 한글이었던 《아이들보이》도 있다. '보이는 소년을 뜻하는 'boy'가 아니라, 읽을거리를 뜻한다고 한다. 의료 관련 잡지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의학 학술지 《한방의학계》는 서구 문물과 의술이 밀고 들어오던 시기에 한의학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게 법의학이다. 18~19세기 조선시대 법의학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자료도 가천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1792년과 1796년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증수무원록》이다. 제목 그대로 '억울함을 없게 하라'는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법의학서다. 사체의 시간대별 변화부터 사인 규명방법까지, 감정에 필요한 각종 사항과 절차를 담았다.


1845년, 충남 아산지역에서 발생한 이소사 여인의 변사 사건 <검시형도>도 있다. 시신의 앞면 54부위와 뒷면 26부위 등 총 80여 곳의 상태를 자세히 기록했다. 밭에나가, 김을 매고 있던 이소사가 동네에서 양반 행세를 하고 다니던 허삼손이라는 자에게 겁탈당하고 자살했다. 수사기관은 검시형도를 기초로 검시와 문초를 반복한 결과, 사건을 해결했다. 허삼손은 '겁탈과 위협과 핍박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는 참한다'는 대명률 조항에 따라, 참수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증수무원록》과 <검시형도>는 하나의 세트로 봐야 한다.


가천박물관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약전'이라는 현판도 있다. 추사는 19세기 동북아시아 최고의 예술가로, 중국과 일본의 문화인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최초의 한류스타라고 할 수 있다. 현판은 추사의 글씨를 양각으로 새기고 파란색 안료를 칠했다. 어디에 걸려 있던 현판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약재를 취급하던 의약 관련 기관의 건물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